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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모두 "섬"이다.

여백 채우기

by 흥자 2007. 9. 6.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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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종일 대지를 달군 태양이 제 모습 감추 었는데도 활짝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엔 열기가 묻어있다.

  토요일, 늦은 저녁을 먹고 나니 내일은 평소처럼 바쁘게 서두르지 않고, 게으름을 피워도 좋을 휴식이 기다리고 있음인지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평소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저녁 산책을 위해 정자에 잠깐 앉아 바람을 쐬었다.

  내 삶의 쉼터가 있는 이 곳엔 줄잡아도 만 명쯤 되는 사람들이 매일 같이 같은 길로 드나들고,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며 변함없이 찾아오는 일상들을 살아간다. 그 집집마다에 붉을 밝힌 창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 라니 마치 검은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대한 함선 같다, 그 함선을 바라보다 지금 이렇게 부담 없는 시간, 편한 마음에 모양새 갖추지 않은 헐렁한 옷차림으로, 살갑게 찾아가 차 한잔 얻어 마시거나, 삼겹살에 소주 한잔으로 세상사 돌아가는 이야기에 푸념 아닌 푸념을 해도 좋고, 더러는 팔불출이 되어 내 아이의 자랑과, 내 남편의 악의 없는 흉을 봐도 좋고, 들어도 그만 안 들어도 그만인 끝없는 수다를 떨어도 좋을 집, 그런 집 뉘 집 일까 생각해 보니 얼른 떠오르는 집이 없다. 이럴 때 느낌을 "대중 속의 고독" 이라 했던 가. 모두가 낯선 사람들의 모습이다.

 

  거대한 낯선 사람들의 함선에 작은 공간 마련하고, 그들과 똑같이 해가 뜨고, 지는 하루를 맞이하며 호흡한지가 벌써 6년이 지나가는 데 아직도 이곳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섬처럼 떠있는 것은 어쩜 쉽사리 사람을 사귀지 못하는 성격과, 썰물처럼 빠져나갔다가 저녁에 돼서야  밀물 들듯이 슬그머니 찾아오는 곳이고 보니 더 그런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썰물과 밀물이 되어 고만 고만한 삶의 행복을 낚아 올리며 아기자기 살아가고 있는데 난 그 속에 홀로 떠 있는 외로운 섬 같다는 생각을 하며 동네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주변에는 새롭게 단장한 어느집 개업식이 있는지 휘황한 불빛과 주위 시선을 끌기 위한 젊은 처녀의 현란한 몸짓과, 고막을 자극하는 알 수 없는 주절거림으로 홍보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한 무리 보이고, 요상한 기계 음을 내며 길가는 손님을 유혹하는 오락기계와, 저마다 치장을 하고 조금이라도 더 길손들의 눈에 뜨이기 위해 휘황한 색상과 자꾸만 밝아지는 간판의 네온등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참으로 다양하다. 동물병원, 오락실, 노래방, 호프집, 베스트프드점, 음식점, 각종 학원들, 편의점,...등등 우리들 삶의 형태만큼이나 다양한 얼굴로 길손들을 맞는다.

 

  한 모롱이를 돌았다. 그 현란하던 간판의 불빛은 보이지 않고, 거리를 오가는 자동차 불빛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 곳 사방으로 뚫린 교차지 점을 지나는 곳엔 전에 볼 수 없었던 키다리 전광판이 서 있고, 사각의 화면 속에는 뽀얗게 분칠한 판도마임 광대만이 열심히 연기를 할 뿐. 그 앞을 지나는 무심한 사람들은 그가 왜 그 자리에서 그런 무언극을 하며, 무엇을 전달하려 애쓰고 있는지 누구하나 관심 주는 이 없이 무심히 지나쳐 갈 뿐이다.  쉴새 없이 오가는 차량들 틈을 단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담보로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슬아슬한 곡예를 부리며 무단 횡단하는 용감(?)한 젊은이들 모습도 보인다. 이렇듯 많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서 저마다의 모습과 저마다의 색깔로 살아가건만 모두가 낯설기만 하다.

 

  섬은 바다에 있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존재하는, 사람들 틈에서 느끼는 고독감 이것이 바로 사람들 사이에 떠 있는 단절의 섬이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하나의 작은 섬인지도 모 른다. 내 주위에 어떤 끔직한 일이 벌어지든 나의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다. 길을 가다가 누군간 뺑소니친 차량에 한 목숨이 경각에 달린 것을 보거나, 청소년들의 집단 구타 현장을 보아도 외면하고 지나치며, 어린이나 노약자가 곤경에 처하더라도 그냥 지나친다. 그저 나의 안위를 위하여. 혹여 나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하는 철저하게 타인이 된 그들과 함께 눈멀고 귀 막은 채로 자신만의 보호막을 친 창틀 속에 갇혀 웃고, 울며 사는 타인의 바다를 표류한다.

 

  바다는 어머니의 자궁, 섬은 그 분신이다.
언제나 쉬지 않고 들려주는 파도의 이야기에 섬은 깊은 바다 속 세상을 배우고, 끝없이 멀고 먼 바다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에 세상을 배우고, 그 넓은 엄마의 품속에 안겨 행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의 수면에 침몰해 버릴 것 같은 혹독한 자연의 시샘에도 홀로 견뎌야 하는 고독한 존재다. 폭풍우 밀려오고 격랑의 거센 파도가 몰려와 몸부림치며 우~우~우 울어도 결코 떠날 수 없는 섬.

 

  난 섬이다.
  아니 우리 모두는 낯선 타인의 바다에 함께 떠 있는 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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