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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날다

여백 채우기

by 흥자 2007. 7. 1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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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날다

육중한 철문의 빗장이 금속성 마찰음을 내며 열렸다.
높은 담장으로 세상과 테두리를 짓고, 푸른 수의에 수인번호를 새겨놓은, 이름 대신 숫자로 명명되는 갇힌 자들의 삶이 있는 곳이다.
극도로 제한된 자유, 세상과 격리된 또 다른 세상 속, 자유의 경계선을 무표정하게 지키고 서 있는 사람을 지나 검색대를 지나 싸늘한 바람이 옷깃을 훑고 지나가는 대전교도소 교무과 긴 복도를 안내인과 함께 걸었다.
교정위원 위촉장을 받기 위해 들어선 사무실 유리창에는 커튼대신 무수한 세로와 가로의 빗장이 사방으로 촘촘히 서 있다.

지난 해 지인으로부터 우연한 기회에 교정위원 제의를 받고 ‘한번 같이 좋은 일 해보자’고 하는 말에 동의를 했고, 이를 위한 교정교화상담사 교육을 경기대학교 대학원에서 받았다.
그러던 중 교정위원으로 위촉되었으니 방문해 위촉장을 받아가라는 안내문과 전화 통지를 대전교도소 교무과로부터 받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하여 찾지 못하다가 해를 넘겨 찾게 되었던 것이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뜻하지 않게 범죄에 휘말리기도 하고, 격한 감정을 순간 통제하지 못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갇힌 삶을 사는 사람들 중 더러는 계획적이고 치밀한 범죄를 저지르는 지능범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어 유배되기도 하고, 더러는 낡은 이념의 희생양이 되어 단절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정신적 혼란과 때 늦은 후회로 가슴 치는 사람들,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한 가닥 소망이 되는 글이라도 전하고 싶어 동의를 했다.
아니 그 보다는 몇 해 전 읽었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에서 1968년 통혁당 사건으로 투옥되어 20년간 옥중 생활을 했던 신윤복 선생의 사색의 장소, 자신과의 대화의 장소, 내면의 깊이를 키워갔던 특별한 곳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작은 생명의 존엄과 사유의 깊이를 짧은 글 속에 담아내던 우물 같은 풍경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곳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은 방문해 보고 싶었던 생각의 사치를 품었던 곳이다. 그러던 차에 지인의 제의는 반가움과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일으켰다.

단절의 섬, 그 곳도 다양성이 존재하는 세상임을 알게 했던 지난 해 늦가을 아주 특별한 예술제를 접했다. ‘갇힌 자들의 사은 예술제’ 그 활기찬 공연을 펼치던 사람들, 내 아이 또래아이들이 펼치는 자유분방한 몸놀림과 생기발랄한 노래, 춤, 미색의 연미복을 입고 화음을 맞추던 여인들의 모습, 눈물로 읽어내던 편지가 깊어지는 가을밤을 애리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갇힌 자의 음악회가 아닌 사회의 열린 음악의 장, 축제의 장에서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저 많은 끼를 건전한 방향으로 발전시켰더라면 아이들이 환호하는 TV속의 주인공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연민의 정으로 가득했던 아주 특별한 예술제였다.

인간은 누구나 갇혀 있다.
어느 곳에서 보는가에 따라 누가 갇힌 자이고, 누가 자유인지 역지사지로 생각해 볼 문제다. 푸른 수의(囚衣)세상, 숫자들의 세상, 그 곳 뿐만이 아니라 세상 밖의 삶도 저마다의 틀 속에 살아간다. 조금 넓고 좁을 뿐이지 우리들은 모두 갇힌 세상 속에 존재하고 있다.
자유를 잃어버린 몸, 생각의 자유마저 저당 잡힐 수 는 없다.
자신의 의지를 다스리지 못해서 갇힌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자유의 경계를 허물고 세상과 연결하는 통로가 되고 싶다.
사람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도 마음을 움직이는 글 하나 품고 있으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마음 바닥을 톡톡 건드려 주는 시 한편, 운명을 두드리는 그림 한 조각 가슴에 담고 살아간다면 적어도 절망에서 다시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때때로 큰 것 보다는 작은 것에 감동하고 살아간다.
절벽에 작은 소나무, 그 밑에 위태롭게 피어있던 들꽃 한 송이에서 눈물겨운 감동을 얻기도 한다. 아픈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유배의 섬, 그 온기 없는 틀 속에 온기를 불어넣는 따뜻한 세상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다.

액자 속에 박재된 위촉장을 받고 세 개의 철문을 지나 면회실을 지나 정문을 빠져 나오며 되돌아본다.
저 냉기 흐르는 곳, 무수한 수직의 선들이 그림자도 없이 서 있는 곳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따라 시계바퀴는 쉼 없이 돌고 있을 게다.
담장 안에 냉랭하게 흐르던 공기, 표정 없이 서 있던 수위가 반사적 몸동작으로 철커덕 빗장을 잠그는 소리를 들으며 바라보는 산자락엔 잔설이 유난히 눈이 시리다.
흐린 하늘처럼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를 털고 한들한들 날리는 눈송이를 보며 정문을 벗어나 한적한 길을 돌아 나왔다.
육중하게 서 있던 철문의 무게만큼 가슴을 짓누르던 암울을 털고 혼자 되 뇌여 본다.
날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운명이지만 날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은 타락이다.
내 비록 햇살에 녹아 흘러 떨어지는 이카루스라 해도 이제 그들을 위해 작은 날개 짓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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