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소망 하나

여백 채우기

by 흥자 2007. 7. 16. 14:09

본문

소망 하나
2006/01/06 오후 2:45 |

하나를 마감하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해를 넘기고 맞이하면서 하게 되는 이런저런 생각들이다.
얼음 속에 뿌리를 박은 꽃나무가 진한 붉은 꽃을 피워내고, 폭설을 지나온 나뭇잎이 고운 단풍을 자랑한다는데..., 겨우 날다람쥐같이 빠른 시간의 공회를 절감하며 부실한 나이테 하나를 더할 뿐이다.
세련되고 밀도 높은 삶의 문양을 새기지 못한 어딘지 일그러진 시간의 궤적 같은 나이테 하나를 더 하며 인생의 한 계절을 시작한다.

녹슨 심장에도 피가 돌며 생명의 환희로 가득한 꽃가루를 산천에 뿌리며 저 홀로 중얼중얼 찾아오는 젊은 여인의 계절 같은 봄이 아니다. 여린 생명들을 청량한 바람과 순한 햇살로 키워온 오월의 들판을 지나고, 칠월의 폭염을 이고 있던 하얀 벼꽃이 조석으로 한숨 돌리며 지친 더위를 풀어내는 초가을 같은 시간의 궤도를 지나고 있다.

나만의 울타리에 지고지순한 의식을 가두고 ‘모든 것은 운명 지워진 것이다’ 생각했던 지난날은 한가함 자체였다. 익음을 위한 정중동의 시간, 여름들판을 휘젓고 지나가는 광란의 바람 같은 내 안의 반란으로 혼란스러웠던 지난해다. 여름의 뒤안길을 돌아 찰진 푸른 빛으로 너울거리던 생각의 잎들이 의식의 징검다리를 건넌다.
이런저런 사고와 부딪히며 나름으로 의미를 붙이려 해도 찾아볼 수 없었던 허의 실체를 안고 자만의 의식만 키웠던 시간들이다. 진실을 보지 못하는 눈은 누군가의 종달새가 되어 세상에 읊조리며 가벼운 허상의 메아리만을 남겼다.
한번 읽고 사라지는 글로 일관했던, 시계의 바퀴만을 �기 위해 생각을 담지 못하고, 객관적 사실만을 그것이 진실인지 허상인지 개념의 가닥도 없이 맹목적 써 내린 설익은 글들 앞에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들, 그것들이 때로는 진실을 가장한 위선이 되었고, 나 또한 위선의 도구가 된 글들을 남용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땅 속의 풀씨를 흔들어 깨우던 봄이 지나고, 풀잎을 키워가던 여름들판을 지나 초가을로 접어드는 세월의 강, “시간은 여기 있고 아, 사라져가는 것은 우리들이다.”라며 영구한 시간 속에 존재의 유한성을 탄식했던 어느 공동묘지의 비문처럼 혼란스럽던 지난해는 시간 속으로 사라졌다.
꽃은 열매를 맺기 위해 피고, 바람은 잎을 흔들어 소리를 키워간다. 봄에 심었던 내 정원의 꽃들, 여름을 지나며 광란의 태풍 속에 더러는 잎이 찢겨나가고, 더러는 꿋꿋하게 남아 열매를 키워가고 있다.
비린내를 감추게 하며 일시에 씻어주기도 하는, 병들고 악취풍기는 세상에서 그윽한 향기로 청신한 향료를 뿌리는 산초열매 같은 글, 그런 글을 쓰기 위해 세상 온갖 감정의 유혹으로부터 스스로를 유배시킨 삶을 살아야 한다.

익음을 위한 분주한 움직임으로 수런대는 초가을 들판을 지나가는 바람 같은 날들, 마음 한 구석을 채우고 있는 가난한 마음들, 귀를 기울여야 들려오는 풀잎의 숨소리를 담아내는 글, 가진 것이 없거나 적더라도 넉넉한 기분을 갖게 하는 인간냄새로 가득한 투명한 글을 써야 한다.

살아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소리를 낸다.
혹한의 겨울을 견뎌낸 나무들이 안으로 나이테를 만들며 저 만의 궤적을 쌓고 여물어 가듯 단단하고 동그란 삶의 문양이 깊이 새겨진 나 만의 나이테를 더하며 내 삶이 내 소리를 내며 여물어 갈 것이다.

'여백 채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린 모두 "섬"이다.  (0) 2007.09.06
'화려한 휴가'를 보고  (0) 2007.08.07
이카루스 날다  (0) 2007.07.16
아름다운 수(數)의 만남.  (0) 2004.09.05
문학적 모토(母土)가 살아 숨쉬는 곳 - 충주  (0) 2004.09.02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