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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모토(母土)가 살아 숨쉬는 곳 - 충주

여백 채우기

by 흥자 2004. 9. 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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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적 모토(母土)가 살아 숨쉬는 곳 - 충주


 

세기적인 더위의 연속을 무사히 견뎌온 여름의 끝자락, 확연한 계
절의 고리를 끊어준 태풍 '메기'가 비교적 순하게 한반도를 지나가
고 난 주말이다.
희뿌연 하늘과 한결 서늘해진 공기에 가을이 성큼 다가 왔음을 느
낄 수 있는 날, 글로서 마음을 나누던 사람들, 글이 삶이고, 삶이
글이 되는 벗들과 충주로 향하는 길이다.
산, 강, 호수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호반,
선비들의 예술 혼이 살아 있는, 도시로 향하는 마음은 소풍가는 어
린이 마냥 들뜨기가 까지 하다.
달리는 차 속에서 오순도순 나누는 이야기에 새록새록 자라는 도타
운 문우의 정을 확인하며, 동시대를 살면서 느끼는 애환과 생활 속
에서 얻은 삶의 철학을 녹여 한편의 시로서 풀어내기도 하고, 때로
는 수필로서 이야기하는 글벗들의 얼굴 속엔 진솔함이 묻어 있다.
차장을 스치는 한 폭의 풍경화엔 진초록 성숙함으로 물든 벼이삭들
이 토실토실 살을 찌워 가는 들녘을 지나고, 손 뻗으면 닿을 듯한
산들과 강을 건너온 보드라운 바람이 우리를 환영하는 듯 하다. 내
고향 어디쯤과 같은 포근한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현존하는 신라
최고(最古)의 석탑 중 하나인 중앙탑 아래서 반가운 해후를 기다리
던 동인들과 만났다.


통일신라시대 국토의 중앙이라 하여 세워진 중앙탑, 역사의 번성과
숨결이 숨쉬고 있는 곳으로 매우 고준한 느낌을 풍기며 단정하면서
도 강건해 보이는 7층 석탑이 옛 영화를 자랑하고 있다. 탑을 안고
있는 남한강에는 보내는 여름을 아쉬워하듯 젊은이가 하얀 물살을
가르며 수상스키를 즐기고 있다. 잔잔한 푸른 강변 언덕 위에는 신
라의 악성 우륵이 제자들을 가르치며 가야금을 타고 즐겼다는 탄금
대(彈琴臺)가 우뚝 서 있고, 철썩철썩 둑에 부딪히는 강물 소리가
가야금 뜯는 소리처럼 들려오는 팔각정가에는 손끝만 살짝 대도 간
지럼을 타서 베실베실 웃는다는 베롱나무(백일홍)꽃이 예쁘게 피어
있다.
가난을 예술 혼으로 살려낸 떡방아 찢는 가얏고 소리가 강바람 한
자락에 묻어 중앙탑 아래 머문다. 농민들의 한과 고뇌의 삶을 투박
하고 쉬운 언어로「농무」속에 녹여내며 시대와 아픔을 함께 하고,
민초들의 언어를 대변했던 문학의 터가 되었던 곳, 그 아래 열려진
사고를 가진 새내기 문인들이 진지한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다.
문학의 본질과 문학인의로서의 자세를 이야기하고, 문학적 역량을
키워 문단에 우뚝 서는 기둥으로 자랄 것을 다짐하며 충주가 자랑
하는 호반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러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했다.


희미한 햇살 속에서 유난히 빨갛게 익어가고 있는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나무 가로수가 너무도 인상적이다. 그 빨간 볼만큼이나 열정적
이고 아름다운 사람들, 인심 좋은 사람들이 살 것 같은 도심을 지
나, 산허리를 감고 돌고 돌아 산과 산으로 띠를 이룬 충주호에 닿
았다.
잔잔한 수면에 띄워진 유람선 위에 흥분과 기대감을 안고 조심스레
올랐다.
출렁, 일렁임이 일고 움찔하더니 배가 움직인다. 산과 산이 어깨동
무를 하고 물을 안고 있고, 물과 물이 산을 안고 키워주는 상생(相
生)의 아름다움, 병풍처럼 우뚝 선 암벽에는 멋들어진 소나무와 옛
문장가의 멋진 글귀가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멀리 혹은 가까이
스치는 올망졸망한 산, 그림자조차 담아내지 못하는 깊고 푸른 호
수에 미끄러지듯 지나가는 유람선 옆으로 어느 님을 기다리다 지쳐
마른 가슴이 되어버린 나뭇가지 하나가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있다. 많은 전설과 추억을 고스란히 남겨두고 마을을 떠나오던 실
향민들의 빈 마음과도 같은 쪽배 한 척이 사공은 어디 가고 홀로
떠서 수몰된 마을을 유영한다.
뒷동산 묘뿌랑지에서 말타기하고 놀던 유년의 추억과, 바둑이와, 책
보와, 딸가닥거리던 도시락과, 마을 어귀를 돌아오던 소리들, 밥 짓
는 연기며, 밤 먹어라 부르던 소리들, 골짜기마다 살아 있던 전설이
수장되고 얻은 호수다. 그런 호수 속에 담긴 물들이 들판의 풀을
키우고, 나무를 키우고, 짐승을 키우고, 사람을 키우는 발전의 밑거
름이 되고 있다.
상실과 성장의 상반된 조화로 가득한 호수 위에 누군가를 기다리듯
떠 있는 빈배에 마음 한 자락 얹혀 띄워 본다.


유람선이 느린 듯 빠른 듯 호수를 가른다.
희고 푸른 바위들이 대나무 순 모양으로 힘차게 우뚝 치솟아 절개
있는 선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옥순봉, 조선 명종 때 단양군수
이던 퇴계 이황이 단양의 관문임을 표기하였다고 하는 단구동문(丹
丘洞門)이라는 글씨가 아직도 남아 있는 비경을 뒤로 두고, 물 속에
비친 아홉 개의 암봉이 거북무늬를 띄고 있다 해서 붙여진 구담봉
을 돌아, 금수산 절경을 지나, 월악산 넓은 품을 아우르는 골 골이
아름다운 전설을 더듬는 뱃머리는 세 개의 나루터를 돌아 누군가는
내려주고 또 누군가를 태우고 회항을 한다.
가던 길 돌아오는 유람선 속에는 삼삼오오 짝을 이뤄 문학적 열기
를 토해내고, 빼어난 풍광에 쏟아지던 감탄사가 한편의 시가 되고
글이 되어 원고지에 구술로 꿰어 놓는다.
긴 그림자 드리우는 석양은 수면 위에 가득하고, 물결을 가르는 바
람은 시원스레 뱃전에 머물며 세상사에 찌들었던 마음을 정결하게
씻어준다.
중원의 중후한 멋과 수려한 호반의 풍경과 글벗들과의 추억 한 자
락 수면 위에 남겨두고 아름다운 만남을 기약하며 길을 나섰다.
저 홀로 떠 있던 빈 배 한 척 따라와 마음을 잡는다. 빈 마음으로
사색의 바다를 유영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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