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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사람들이 사는 새도 울지않는 땅

일터에서

by 흥자 2007. 12. 2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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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 사람들이 사는 새도 울지않는 땅

-고려 5백년 도읍지 개성을 다녀오다

 

어제의 경계를 약간 벗어난 어둠이 가득한 시간이다. 눈을 떴다. 시계를 들여다봤다. 출발 약속된 4시까지는 아직도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꿈에도 생각하기 힘들었던 분단의 땅, 고려 오백년 도읍지로 역사의 도도한 맥이 흐르고 있는 가장 가깝고도 먼 땅, 바라봄으로 동족임을 확인해야 했던 그 곳에 빗장이 열렸다. 참으로 설레는 마음에 잠을 이를 수 없었다. 개성을 향해 떠나는 버스는 가로등이 졸고 있는 고속도로를 달린다. 정신은 더없이 맑고 푸르다. 정적을 깨트리며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많은 생각들이 앞서 간다. 우리 일행을 태운 버스가 집결지인 도라산역에 도착했을 때는 먼동이 훤히 터 오는 시간이었다. 가슴은 두 방망이질을 한다. 판문점을 순회하는 셔틀버스로 옮겨 타고 남∙북출입국관리소(CIQ)에 도착했다.

 

-분단의 선을 넘다.

개성관광을 함께할 전국 경향각지에서 모인 삼백여명의 사람들로 출입국(CIQ) 관리소가 북적인다. 개성방문에 대한 주의 사항을 듣고 명단을 확인 한 후 남측CIQ를 지나 연 이어져 있는 북측CIQ로 오전8시3분, 넘어갔다. 우리 측에서 넘겨받은 명단과 신분증을 대조하는 간단한 수속을 마치고 검색대를 지나 북측CIQ에 준비된 차량들 앞에 섰다. 현대아산의 북측운행 전용 차량에 북측 관리원이 올라 차량검사를 끝낸 후 개성을 인연으로 하루 일정을 같이 할 하나의 조로 묶여진 사람들이 10대의 차에 나눠 올랐다. 개성을 안내할 북측 해설사와 관리원도 동승을 했다. 주최 측의 부탁이 이어 졌다. 서로가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 각별히 말조심 할 것을 당부한다. 동족간의 이질감이 스르르 스며들어 서글픔이 밀려온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량이 서서히 북측CIQ를 빠져나와 비무장지대를 향해 달려간다. 

‘생태계의 보고’라 하는 숲이 잘 보전된 곳이지만 겨울을 맞고 있는 비무장지대에는 회색빛 침묵이 흐른다. 낯설지 않은 땅, 가슴이 뛰었다. 긴장감이 돌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흥분과 감동과 긴장감이 내재된 야릇한 기분이다. 비무장지대를 벗어나니 나무 한그루 없이 속살을 드러내고 흰 눈 속에 살포시 안겨있는 산야가 우리를 맞는다. 고향의 옛동산처럼 가슴 애리는 풍경이다. 도대체 이 황량한 땅, 나무 한 그루 보기 힘든 저 산과 저들에서 무엇을 경작하여 먹고 마실 수 있단 말인가, TV화면 속에서 간간히 보았던 모습들을 눈으로 대하는 순간, 가슴이 뻐근하고, 눈이 아파왔다. 한 대의 차량도 오가지 않는 고속도를 우리 일행을 태운 차량들만 줄지어 달리고 있다. 그것도 수십년을 깨우듯이 느릿한 속도다.


한참을 달렸다. 백만평규모의 개성공단이 펼쳐졌다. 남과 북이 경제적 협력을 도모하며 공동의 발전을 그리고 있는 화해의 땅이다. 반듯 반듯 길이 나고 이제 시작을 알리듯 새롭게 심어 놓은 가로수들이 엉거주춤 서 있다. 남과 북이 손발을 맞추고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공장들도 있고, 그 시작의 단초를 꿰고 있는 건물들도 보인다. 역동성이 살아 있는 개성공단을 지나 우리의 첫 번째 방문지인 박연폭포를 향해 달린다. 서화담 황진이와 함께 송도삼절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고 있는 곳이라 한다. 

버스가 개성공단을 벗어나자 멀리 송악산이 보인다. 차량 밖으로는 발가벗고 있는 북녘의 산야와 허름한 2~3층의 슬라브 가옥들과 마을 입구에 추위에 떨며 장총을 들고 지키고 있는 소년병들이 이채롭다. 장갑도 없이 바알간 손목들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산과 들은 우리와 같건만 같으면서도 다른 풍경이다.


박연폭포에 도착했다. 추운 날씨 탓인지 폭포는 흐름을 멈추고 어름으로 굳어 있다. 우뢰같은 폭포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북측 안내원의 설명을 듣지 않고도 그 위용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병풍처럼 둘러선 층암의 절벽에 안기 폭포와 노송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폭포 뒷자락에 있는 고려 때 쌓았다는 대흥산성을 올랐다. 깔끔하게 정리된 길 위에 눈이 덮여 미끄럽다.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올라 대흥산성 북문을 지났다. 이상하리 만치 온화한 기운이 감돈다. 햇살도, 공기도 숨죽여 맞는다. 이곳에서 따뜻한 차와 수작업한 지팡이를 팔고 있는 판매대에서는 북측 여성들이 차 한잔을 권한다. 우리 화폐가 통용되지 않고 달러를 공용화폐로 취급하고 있다. 미처 달러를 교환하지 못해 주머니만 만지작거리다 발길을 관음사를 향해 옮겼다. 수려한 계곡, 커다란 바위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깊은 골을 이야기 한다. 잘 정리된 계곡 길을 오르다 보니 여기저기 일인통치의 절대자를 칭송하는 붉은 문구들이 새겨져있는 낯설음을 따라 관음사에 닿았다.


송림 속에 고아한 자태로 서 있는 관음사, 스님의 독경소리는 들리지 않고, 무심한 풍경소리만이 우리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겨울바람에 징징거린다.

관음사를 짓던 목수의 아픈 전설이 서려있는 슬픔의 빛깔이던 가 단청도 청색계열이 더 강하다. 뒷마당에 솟아나는 맑은 생수로 목을 축이고 하산을 했다. 박연폭포를 뒤로 두고 나오는 길에 들른 위생관(화장실)에는 북측의 미약한 생활시설과 경제적 환경을 읽을 수 있었다.


-시장이 반찬이던 빛나는 열두첩 반상

점심식사를 위해 박연폭포를 뒤로 두고 구절양장 같은 길을 버스가 천천히 간다. 겨울의 쓸쓸함과 적요로움이 감도는 산하, 낡은 전신주에 간신히 걸쳐져 있는 가르다란 전선으로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초라한 전봇대와 허름한 풍경에 가슴이 먹먹하다. 내가 자란 시골 풍경이 꼭 그랬었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던 그 겨울 풍경이 시간을 거슬러 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적막한 산야와 하얀 눈, 차갑게 불어대던 바람. 그 서늘함에 더하여 극도로 제한된 자유, 눈시울이 붉어진다. 풍경에 잠겨 있다. 마음속에 머릿속에만 넣어야 하는 영상이다. 렌즈 속에 담을 수 없는 가슴과 머릿속에 빈한한 영상을 담으며 개성시내 남대문 옆 통일관에 닿았다. 

넓은 도로, 왕래하는 차량도 없고, 사람도 없고, 허름하고 낡은 잿빛 건물, 4~5층의 낮은 아파트, 겨울 햇살이 간신히 걸쳐 있는 적막감 도는 도시의 한 모서리에 제법 웅장한 규모로 서 있는 통일관 이다. 음식점이면서 사람들의 왁자한 소리나 냄새도 없고, 출입하는 이는 지극히 통제된 채 우리 들 뿐이다. 점심식사를 위해 차량에서 내려 북측안내원을 따라 차례로 들어가 식탁에 앉았다.

12첩 유기그릇들이 상 가득 놓여 있는 소박하고 담백한 상차림이다. 뚜껑을 열었다. 아버지 밥그릇 같던 커다란 식기에 밥이 한가득 담겨 있고, 눈에 익은 반찬들이 정갈하게 담겨 있다. 식기에 담아 놓은 윤기 없이 푸석한 밥알들이 농토가 척박함을 말해 준다. 풀기 없는 밥, 식문화가 변한 것인지 따뜻한 차 한잔 말고는 입맛이 닿지 않는다. 

너무도 이른 출발에 아침밥을 거른 탓인지 식사는 마파람에 게눈 감추 듯 했다. 아마도 남측 손님들을 맞기 위해 말끔히 단장한 듯 하지만 그래도 피폐한 모습들이 보인다. 밥을 먹는 통일관 천장에는 서생원이 눈치를 보며 밥 달라고 조르고 있고, 멀리 언덕위에 서 있는 김일성동상은 주민들의 허기짐을 아는지 모르는지 햇볕에 누런 광채를 빛내고 있다.

정말이지 너무도 조용한 도심이다. 홀로 개성시내를 굽어보고 있는 김일성 동상을 뒤로 두고 숭양서원으로 향했다.

 


숭양서원은 고려의 충신 정몽주선생의 혼이 살아 있는 생가 터다. 그 곳을 향하는 길에는 회색빛 도시, 작은 벽돌로 쌓아 올리다만 아파트, 깔끔한 거리의 앞모습과 달리 흙들이 질펀한 뒷골목이 보이고, 거리에 통제된 자유, 동족이면서 말로 안부를 나눌 수 없는 그림속의 사람들이 무리 져 서성이고 있다. 표정 없는 도심처럼 묵묵히 앞을 보고 걷는 시민들, 금방 세상에 나온듯한 자전거, 낮은 아파트, 겨울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드는 젊은 엄마와 아이, 연출된 세상 같은, 그러면서도 역동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고, 가난이 묻어 있는 풍경들이다.

정몽주선생의 우국충정을 지켜온 향나무만은 그 역사를 알고 있는 듯하다.

개성시내에 있는 숭양서원을 돌아 선죽교로 향했다.


역지사지를 생각하게 하는 선죽교, 고려의 문을 닫고 조선역사의 문을 열었던 역사의 장소다. 많은 기대감을 갖고 찾은 선죽교는 화강함의 작은 돌다리, 기대에 못 미치는 곳이다. 그래도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있는 늠름한 메타세콰이어 나무숲에 조용히 앉아 있다. 낮은 도랑에는 물고기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새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그 흔한 까치 집하나 보이지 않고, 참새소리도 없다. 산천이 죽어 있되 충정만은 살아 있는 선죽교를 돌아 고려박물관으로 향했다.

 


고려시대 성균관이다. 후학들을 기르고 국가의 동량을 길러내던 교육기관이다. 웅장한 규모, 낭랑한 학동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릴 듯 하다. 학동들이 기숙을 하며, 글을 읽고 학문을 연구하던 대학기관답게 교실이며 풍광이 뛰어 나다. 성균관 마당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고목들은 천년을 지켜온 이 땅의 역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그 곳에 어떤 일들이 있었으며, 맥이 어떻게 흐르고 있었는지, 그러나 말없이 서 있는 나무들, 몇 개의 교실에는 고려의 전성기 70만 인구를 아우르며 가장 큰 도시였던 개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빛나던 고려청자, 시대의 상황을 재연해 놓은 유물이 전시된 박물관이 들어 있다. 

조상의 숨결이 그대로 살아 있는 성균관과 고려박물관을 나와 기념품을 팔고 있는 기념관에 들렀다. 북녘 땅에서 낳고 자란 토산품과 역사를 말해주는 기념우표, 그리고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다. 개성을 대표하는 인삼주 한 병을 지인께서 사 주셨다. 기우는 저녁 햇살이 산자락 가득 하얗게 널려 있는 아릿한 풍경을 비추고 있다.

낮은 언덕에 자리한 집에서 뽀얀 연기가 솟아오른다. 아스라한 풍경을 눈에 넣으며 개성 시내를 떠나 개성공단을 돌았다. 어둠이 살포시 내리는 시간, 하루의 역사를 접으며 북녘 땅을 빠져나와 우리 땅에 발이 닿았다.


비로소 큰 숨을 쉴 수 있다. 공기의 맛이 다르다. 달콤하다. 자유의 맛이 이런 것 인가보다.

아침에 출발했던 그 자리를 향해 어둠에 휩싸인 북녘의 산천을 마음에 두고 휘황한 불빛 속을 달린다.

한 해를 보내는 회한과 오늘 보았던 북녘의 영상이 유리창에 그림처럼 비쳐진다. 집으로 향하는 마음에 만감이 교차한다. 풍요와 빈곤이 교차하는 하루를 보내며 곤고함을 모르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우리의 반쪽인 북녘의 모습을 잠깐만이라도 느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풍요와 자유로움을 그들도 함께 누리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런 날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한 번 생각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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