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덕사, 등을 맞댄 돌부처 한 쌍.
-수덕사, 등을 맞댄 돌부처 한 쌍.
수덕사 길 모롱이에 위치한 禪미술관 입구다. 등을 맞대고 서 있는 돌부처 한 쌍 앞에 발길이 멈췄다. 등을 돌리고 있는 모습이 오늘 내 모습 같기도 하다. 마음이 시키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무엇에 홀린 듯 이곳에 닿았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 했던가, 한 해를 보내는 끝자락, 그 모서리에 있는 27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부부가 함께하는 연말 모임이 있었지만 문화체험 프로그램 진행을 마치고 난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함께 가자는 권유를 뿌리치고 집에 남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렇게 혼자 모임에 간 남편은 즐거움에 빠져 있는지 전화 한통도 없이 시간이 저물어 갔다. 강추위가 맹위를 떨치는 날씨, 온갖 걱정과 기다림 속에서 그날을 넘긴 시계가 다음날 새벽이 밝아오는 시간을 지나갈 즈음 전화벨이 울렸다.
술에 취해 태엽이 풀린 시계처럼 늘어진 목소리로‘미안하다’며 횡설수설, 그리곤 더 늦을 것 같단다. 이미 오늘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는데 말이다. 할 말을 잃었다. 화를 내기에도 지쳐버린 시간, 말문은 닫고 귀는 열어 놓은 채 기다렸다. 아침이 밝아 오는 새벽 5시, 둔탁한 발소리가 계단을 올라 현관문 앞에 멈추고, 띠,띠,띠~뚜...현관문이 열렸다. 진하게 풍겨오는 알코올 냄새, 내 안에서 끓고 있는 용암이 터져 나오기 일보직전이었다.
끓어오르는 불덩이를 식혀줄 그 무엇이 필요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대는 딸아이의 물음을 뒤에 두고 발걸음을 옮겼다. 집을 나왔지만 딱히 갈 곳이 없어 계룡산을 향해 가는 버스에 올랐다. 시외버스 승강장을 지나치는 순간 무작정 내리고 싶었다. 매표소에 들어갔다. 기다림 없이 출발할 수 있는 버스가 ‘예산’행 이었다.
낯선 버스에 앉았다.
겨울햇살이 차갑게 내려앉은 들판을 지나, 듬성듬성 눈 쌓인 인적이 드문 시골 거리를 지나, 나목으로 세찬 바람을 맞고 있는 가로수의 흔들림을 보며 잠자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예산 복합터미널에 도착했다.
한 시간을 기다려 수덕사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읍내 와 수덕사를 이어주는 길에서 많은 사연들을 실고 내리기를 반복한 버스가 한 시간여를 달려 수덕사에 도착했다. 주변에는 산행을 온 사람들과 여행을 온 사람들로 활기에 차 있고, 상점에는 여행객들의 눈길을 끄는 물건들로 가득했다. 수덕사를 품고 있는 덕숭산 자락엔 흰 눈이 희끗희끗 쌓여 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주변을 살피며 뚜벅 뚜벅 걸어 일주문을 지나 올라갔다.
길 가에 아버지가 어린 자식들을 정답게 안고 있는 자상한 모습을 한 '가족'이란 제목의 조각품이 눈에 띄었다. 차가운 돌멩이에도 작가의 혼이 담겨 있는 온화한 모습에 고단한 삶을 사셨던 내 아버지를 떠올리며 한발 한발 걸어서 도착한 곳이 등을 맞댄 돌부처 앞이다.
사람은 생각 하는 대로 본다고 한다.
보는 관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지는 이 돌부처 한 쌍. 서로의 생각과 이념이 달라서, 가는 길이 달라서 등을 지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하고, 나처럼 화가 나서 앵두라진 부부 같기도 하고, 서로 등을 맞대고 세상을 살아가내기 위해 의지하고 있는 모습 같기도 한 돌부처, 그를 보며 많은 생각에 잠기다 미술관에 들어갔다.
禪미술관, 불교계 최초의 전문 미술관으로 수덕사 대웅전과 닮은 맛배 지붕으로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내부에는 고암 이응로 화백의 작품 과 수덕사 스님이자 서예가이신 원당스님의 작품이 정갈하게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을 돌아 수덕여관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흐릿했던 하늘에서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다.
수덕여관은 세여인(나혜석,일엽스님,박귀희)의 슬픔과 사연이 있는 곳이며, 당대의 화가 두 명이 머물다 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최초의 여류화가 이며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나혜석이 3년간 머물렀던 곳이며, 고암 이응로 화백이 1968년 동백림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고 나와 머물렀던 곳이다.
수덕여관 앞에는 이응로 화백이 프랑스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그렸다는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옥바라지를 했던 조강지처인 박귀희 여사를 두고 스물한 살 연하의 젊은 여자의 품을 향해 갔던 그가‘어떤 생각으로 이 암각화를 그렸을까?’생각하며 수덕여관을 나와 두 명의 금강역사를 봉안한 금강문을 지나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으로 일엽스님이 열반한 곳이기도 한 환희대에도 잠시 들려 대웅전 앞에 마주 섰다.
사람의 맨 얼굴을 보듯 화려한 단청도 없이 수수한 얼굴로 마주한 수덕사 대웅전, 고려시대 목조건축물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로 국보 제49호이며 고려 충렬왕 34년에 조성되었다 한다. 그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견뎌낸 오래된 것에서 풍기는 평안함에 매료되어 사색에 잠겨 있다 보니 어언 30년을 함께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때로는 인생의 승리감으로 자만했던 시간도 있었고, 경제적 불안감으로 세차게 몰아치는 심중의 태풍으로 휘청거릴 때도 있었지만, 기다리고 인내해 준 시간이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곰삭아지면 우리가 함께 걸어가는 길도 저 수덕사 대웅전처럼 치장하지 않고도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눈이 사납게 내렸다.
하얀 눈을 소복하게 이고 있는 작고 큰 암자들 과 수덕사 대웅전의 모습이 눈 속에 잠겨 갔다. 뜬금없이 떠난 여행이었지만, 시대를 살다간 사람의 자취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었고, 불교 예술과, 우리의 건축문화를 감상할 수 있음에 좋았던 수덕사.
시간에 쫒기지 않고 천천히 자신을 돌아보며 등산과 함께 건강도 챙기고, 온천으로 팍팍해진 마음도 풀어낼 수 있는 예산에 다시금 찾아올 것을 생각하며 번잡했던 마음 내려놓고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서둘러 내려오는 길, 어느새 집으로 돌아갈 생각에 차량이 통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2014.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