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友情)의 터널을 지나는 딸에게.
거리엔 쏟아놓은 낙엽들이 스산한 바람에 이리 저리 춤을 추고, 숨이 멎은 듯한 적막한 공간 속엔 짹~깍 짹~깍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유난히 크게 들리는 조용한 밤. 엄마는 지금 너의 책상에 앉아 책꽂이에 꽂혀있는 수학, 영어, 과학, 사회, 영어단어ㆍ숙어, 문법, 독해, 국어, 기술ㆍ가정...등 네가 항상 함께 하는 책들에게 한 권씩 한 권씩 눈길을 주며 너를 보듯 책들을 보고 있다. 이 많은 책 속에는 네가 희망(希望)하는 미래가 숨어있다지만 지금 너에게는 그런 박제된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얼어붙은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는 친구 하나가 더 소중함을 알게 했던 참으로 잔인한 달 시월을 생각해 본다.
계절은 하나의 결실을 거두고, 나뭇잎들은 제 본연의 색으로 곱게 물들며 시월의 축제 속에 깊어가던 마지막 밤. 내게 빛을 가리고 어둠 속을 헤매게 하는 절망의 도전장을 던지며 바로 눈앞에 펼쳐질 현실의 암담함과 난감함과 황당함을 누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으랴. 너의 말 한마디에 내 빛이 사라지던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늦은 열 한시! 딩~동 딩~동...초인종을 연거푸 눌러대는 너의 조급함에 현관문을 열었지.
"다녀왔습니다." 늘 들어오던 활기찬 인사에 반갑게 대답을 하고 간식을 주려 할 때, 넌 컴퓨터를 켜면서 절망의 벽에 부딪히는 한숨 섞인 소리로 "엄마 나 전학하면 안돼?" 라고 물었지, 뜻하지 않은 네 말에 "무슨 소리야?..전학은 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었니?, 친구하고 안 좋은 일 있었니?"...네가 대답할 여유도 없이 연거푸 물었지, 그러자 넌 심호흡하며 침통한 표정으로 "친구들이 날 싫어해." 라며 절대 엄마 앞에서 보이지 않던 눈물을 보였어, 그 때 엄마는 네가 마음이 많이 상해 있음을 알았다만 태연한 척 "왜 싫어하는데?", "넌 이유를 알잖아?", 차근차근 묻는 나에게 "응..저번에 체육대회 때 일인데...어쩌고저쩌고 해서 사회 선생님 수업을 안 듣는다고 아이들이 의견을 모았는데, 난 솔직히 몇몇 아이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수업을 손해 보잖아. 그래서 선생님께 그냥 수업하시라고 편지를 쓰는데, 옆 짝꿍이 보고 수업 듣지 말자고 뭉치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서 날 보고 "배신자"래. 그래서 욕하고, 친구하고도 놀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내 책상을 발로 툭툭 차고, 손으로 두드리고 그래, 그래서 학교 가기 정말 싫어, 내일은 아프다 하고 학교 안가면 안돼?".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소리에 머리가 어질 하며,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네가 하는 말의 뜻인즉 TV에서나, 말로 만 듣던 그 "집단따돌림(왕따)"를 네가 당하는 거라니, 참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히며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되더구나. 상급학교의 낯설음에서 벗어나 이제 학교 생활이 재미있다고 무척이나 좋아하며 뭐든지 적극적인 네가 지금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더구나, 더구나 이번 중간고사 시험은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얻었다고 기분이 하늘 닿을 만큼 좋아 있던 네가, 어쩐지 요 몇 일 사이 얼굴에 그림자가 보이더니만 이제야 속내를 이야기하다니, 그동안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을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프더구나. 그리고 이어 네가 웃으면서 남의 이야기하듯 "근데..엄마!, 그 애들이 모임이름도 지었어"...."이살협" 이 라고.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의미에 그 모임의 본뜻을 묻는 나에게 네가 말해주었지 "이○○살인협회". 쓸쓸한 웃음 지으며 슬쩍 한 말에 엄마는 그만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 친구에게 "살인(殺人)"이란 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 이야기를 듣는 수간부터 내 안의 모든 피(血)는 역류(逆流)하고, 이런 저런 불길한 생각들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음에 밤을 뿌옇게 지새며 마음 가득 어둠을 안고 십일월 초하루 새날을 절망 속에 맞이해야 했단다.
그런 이유로 학교 가기 싫다는 너를 그래도 학교는 가야 한다고 달래서 보내놓고,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하고, 학교를 찾아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무심한 낙엽만이 네 교정에 뒹굴더구나. 내 마음처럼 바람을 타고 솟아올랐다가는 허공을 돌다 이내 곤두박질치며 떨어지더라 엄마의 착잡한 마음같이 말이다. 내 머릿속은 풀어진 실타래처럼 생각이 얽히며 이 현실의 난관(難關)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어떻게 매듭을 풀어야 하나?, 참으로 막막하더라 그리고 울분이 터지더구나. 이 황당한 네 친구들 때문에.
우정(友情)의 터널을 지나는 딸아!
세상은 너 혼자만의 뜻대로 살아짐이 아님을 이 사건을 통하여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 너의 나이에는 판단의 옳고 그름에 따라 네 의견을 분명히 해야함을 안다. 비록 다른 친구들이 Yes할 때 너의 기준에 옳지 않음이라면 NO할 수 있는 것도 용기라는 것. 그리하여 지금처럼 조금의 시련이 온다해도 굳건히 이겨나갈 수 있는 것. 그 것만이 진정한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항상 말로는 그렇게 생각 하고, 그렇게 행동하라 엄마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였음에도, 정작 너에게 이런 뜻하지 않은 친구들로부터의 소외됨을 보면서 엄마의 판단도 순간 흐려지더구나. 어느 것이 진정한 옳고 그름인지...하물며 엄마도 이렇게 혼란스러울진대 너는 오죽했으랴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파 오는 구나.
딸아!,
네가 희망하는 전학이라는 것도 지금은 시기가 아닌 것 같다. 이 어색한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과 관계가 회복된 다음 웃으며 헤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일 때, 최후의 선택으로 생각해봐야 함이라 엄마는 생각한다. 지금 전학을 하는 것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한 방편일 뿐더러, 친구들과의 관계를 만들어 갈 때 네가 자신감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비온 뒤의 땅이 더 굳어지고 단단해 지며, 혹독한 추위를 견디고 피어 나는 꽃들이 더 향기롭듯, 지금 이 갈등을 지혜롭게 해쳐나가 친구들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깊은 우정의 꽃을 피울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제 무서리 내린 가을이 깊어 칼날 같은 바람이 네 종아리를 훑고 지나가는 겨울이 바로 눈앞서 서성이는 구나. 첫눈이 내릴 때의 흥분과 순수한 아름다움 같은 너의 학창시절의 첫 단추인 지금 이 시간, 부디 아름답게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지금 네가 한 행동은 용기 있는 행동이었음에 엄마는 큰 박수를 보내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비록 내 마음은 소금에 절인 것 같다만, 어디서고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 있는 나의 딸이었음에 네가 무척이나 대견스럽다.
힘내라 나의 딸아. 그리고 사랑한다.
2002년 11월 8일.
[전국어머니 편지쓰기 모임 회지43호 ]
드럼은 내게 마법의 피리다
손목이 아프다. 귓전에는 강렬한 비트의 드럼소리가 쟁쟁거린다. 드럼 소리는 내 안에 쌓여 있는 모든 찌꺼기를 퍼 올리고, 잡다한 생각들을 잠재우는 마법의 피리 소리와도 같다.
대학이라는 자유와 열정, 낭만이 있는 지성의 캠퍼스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축제를 위해 드럼을 연습중이다. 고3이라는 정형화된 입시의 틀에서 벗어나 낯설기만 여유로움을 즐기며 땀을 흘리고 있다. 그토록 해 보고 싶었던 동아리 활동과 실컷 읽어보고 싶던 책들, 그리고 무엇보다 매력 있다고 생각했던 축제, 내 모든 ‘꿈, 깡, 끼, 꾀, 끈’을 녹여 낼 수 있을 것 같은 지성의 성(城), 그 성에 들어오기 까지 흘린 땀과, 시간과의 사투가 아깝지 않은 대학생활이다.
5월의 캠퍼스는 지난해 보았던 무채색의 세상이 아닌 총 천연의 생동감으로 유난히 아름답다. 천사의 옷자락 같은 벚꽃이 진 자리에 수국과 장미가 계절을 대신하고 있고, 신록으로 뒤 덮은 캠퍼스는 스물 새내기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오늘도 동아리 방에서 선배들과 연습에 땀을 쏟고 나와 벤치에 앉았다. 머리를 쓸어 올리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 다 보려는 순간 눈부신 햇살아래 붉게 피어 있는 장미꽃이 가시가 돼 눈에 와 박혔다.
내가 드럼을 만나게 된 계기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 깊어가던 중학교 1학년, 그날의 진통과 함께 한다. 정말 생각하기조차 힘들었던 가을,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진화하는 호된 성장통을 겪어야 했던 체육대회였다. 초등학교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서 맞았던 체육대회의 짧은 열광 뒤에 요즘말로 ‘왕따’라 칭하는 고독의 너널을 지나며 외톨이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무엇이든 적극적이고 자신의 주장을 뚜렷이 하는 성격인 나와는 전혀 무관하리라 생각했던 운명의 사건은 피구 경기에서 발생했다.
학년별 종합우승을 좌지우지하는 결승전에서 우리학급과 다른 학급사이에 내려진 판정의 결과를 놓고 친구들이 모두 편파 판정이라며 흥분했었다. 그 결과로 우리학급이 종합우승에서 밀려 준우승에 이르렀다. 이를 놓고 체육대회가 끝난 다음날, 그 경기의 심판을 맡았던 사회선생님이 수업을 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경기 심판에 불만을 갖고 수업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선생님이 들어와 교탁에 출석부와 책을 내려놓고 수업을 시작하려 하는 순간 친구들이 일어나 교실 뒤편으로 나가고, 앉아 있는 친구는 나를 포함 세 명이었다. 그 나마도 황당해 하는 선생님과 교실 뒤편 친구들의 눈치를 살피더니 두 명의 친구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시선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는 나에게로 쏠렸다.
내 판단에는 경기의 승부와 공부는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고, 늘 부모님께서 자신의 판단에 따라 모든 사람이 “yes"하더라도 ”no" 할 수 있는 마지막 한사람이 되리고 하셨던 가르침 때문이었는지 친구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사건이후 이상과 현실은 부조화를 이루며 ‘왕따’라는 옹이를 가슴에 만들어 줬다.
그 때부터 시작된 따가운 눈총, 수군거림, 외톨이, 배신자ㆍㆍㆍ이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나를 괴롭혔고, 다른 지역에서 이사를 와 친한 친구가 없던 나의 학교생활은 지옥이었다. 부모님께 전학을 시켜 달라고 울면서 떼를 썼다. 그러나 부모님은 “지금 이 사태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학을 간다면 그곳에서 적응이 더 힘들 것이다.”, “이제 곧 겨울 방학이고, 학년이 바뀌면 친구들도 반이 나뉘고 나면 괜찮아 질 것이다”라고 위로를 했다. 그렇게 뒤에서 고독의 터널을 빠져 나올 수 있도록 버팀목이 돼 주시면서 부모님이 배우기를 권한 것이 드럼이었다.
정말 정신없이 드럼에 빠져 있었다. 내 안의 모든 것을 쏟아내는 소리, 나의 위로가 되어 주던, 연주라기보다는 차라리 울부짖는 몸짓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익혔던 드럼이었는데 마음속 앙금이 치유되지 않은 채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입시의 트라이앵글 속에 갇혀버린 실험용 쥐, 교육제도의 마루타로서 고등학교 3년을 마무리 했다. 가슴속에 응어리진 ‘왕따’라는 아픔이 얼마나 컸던지 학력고사를 마치고 참담한 중학시절을 보내게 했던 친구를 의도적으로 만났다. 그에게 정말 묻고 싶었다. “그때 왜 그랬느냐고?”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사과를 받고 싶었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허탈함 이었다. “친구들에 휩쓸린 군중심리” 때문에.... “미안하다”.
나에게는 지울 수 없는 아픔이 누군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사건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진심어린 친구의 사과에 모든 것을 털어 버리고 가볍게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됐고, 축제 공연을 위해 다시금 잡은 스틱이다.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다.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드럼 소리가 쟁쟁거린다. 지하실의 퀴퀴함과 젊음의 열정이라는 상반된 모순이 젊음이란 단어 앞에서 조화를 이룬다. 선 듯 오월의 바람이 불어 와 땀을 식혀 줬다. 그간 내안에 굴레처럼 옥죄었던 ‘왕따’를 벗어던졌다. 이제는 내 안의 폭풍을 잠재우려는 몸짓이 아닌 좋은 템포와 느낌과 맛을 낼 수 있는 연주(play)를 위해 연습하고 있다. 팔이 아프다. 온 몸이 아프다. 노력과 인내를 요하는 공연준비를 하면서 함께 땀 흘리는 선배와 친구들이 있어 좋다. ‘미처야 미친다’는 평범 속의 진리를 배울 수 있고, 생각의 확장과 인간관계의 맥을 넓히며 지성의 우물을 깊이 할 수 있는 대학생활, 내 삶의 방점을 찍으며 많은 것들을 생각 한다.
대학!, 이곳이 나의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이다. 내 변화의 모델, 나를 곳곳이 세우고 현실을 딛고 서는 참 스승이 되기 위해 이제 막 걸음을 떼며 맹수처럼 포효하는 내 안의 열정을 역동적인 몸짓과 소리에 담아 당당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있는 자화상을 정립해 나갈 것이다. 내 이상형의 바로 밑자락에서 멈춰버린, 아니 중학교 때 겪어야 했던 아픔으로 인해 교직을 택하게 된 동기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처럼 군중심리에 휩쓸린 다수에 의해 선의의 희생양이 되지 않고, 아름다운 친구와 지식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자,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내 정신과 육신을 일깨우는, 나를 다시금 존재케 했던 생명의 소리를 대중, 아니 선배들 앞에서 쏟아 낼 수 있는 공연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