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 꽃다발에 묻어온 프러포즈
진달래 꽃다발에 묻어온 프러포즈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신발장 위에 놓여진 하얀 봉투에 꾹꾹 눌러 쓴 내 이름자 적힌 우편물이 눈에 들어왔다.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날아온 총동문회 개최에 참석해 달라는 초대장이었다. 중학교를 졸업한지도 벌써 강산이 세 번은 변했건만 사돈네 안방에 앉아 있는 듯한 현실에 발목이 잡혀 매번 소식을 접하면서도 참석하지 못했었다.
세월의 길목을 지나면서 나 아닌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잃어버린 청춘의 한 조각들을 주워들을 수 있는 동창회 참석을 놓고 내심 고민을 하다 그래 이번에는 만사를 재처 놓고 참석해보자 하는 마음에 길을 나섰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은 벌써 교정에 가 있다. 오가는 차량들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렸다. 하루가 다르게 짙어지는 푸른 잎들이 바람에 뒤척이며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찰진 연초록 어린잎들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무언의 대화를 건네는듯하기도 하고, 까만 얼굴에 눈빛만 반짝반짝 빛이 나던 친구들의 얼굴을 생각나게도 한다. 어린 날의 단상에 잠겨 있는데 기다리는 버스가 도착을 했다.
도심을 벗어난 버스는 들녘가득 생명의 충만함으로 넘실거리고, 단정하게 쓰레질한 무논과 농담을 달리하는 낮은 산자락이 아련한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개울을 안고 달리는 굽이진 길에는 벚꽃이 바람에 분분히 날리며 절정을 이루고 있다.
천사의 웃음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은 모습에 감탄을 쏟아내며 차창 풍경에 잠겨 있는데 어느덧 추억의 저장고 같은 학교에 닿았다.
학창시절 체육대회를 연상시키는 음악소리 왁자한 학교 정문에 들어섰다. 예나 지금이나 학교 앞 풍경은 정겹기 그지없다. 눈물이 핑 돌았다. 쉬는 시간, 줄달음을 쳤던 문방구, 튀김집, 뒷동산, 느티나무, 등나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려있던 보랏빛 꽃그늘에 앉아 소담소담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 홀로 가슴앓이를 하며 좋아했던 선생님, 운동장 가득하던 친구들의 왁자함, 청춘은 어디가고 세월을 온몸에 두르고 있는 친구들과 선ㆍ후배를 만났다.
온 가족이 동문이 되는 시골 학교 총 동문회는 절정 속으로 빠져들었다. 더러는 번쩍이는 금배지를 달고 금의환향한 친구도 있고, 더러는 삶의 터널을 지나며 실의를 안고 삶의 위로를 얻고자 참가한 친구도 있었다. 읍내 가득 울려대는 왁자한 음악소리에 정신이 혼미 스러웠다. 윙윙대는 소리를 멀찍이 하기 위해 학창시절 그렇게 좋아하던 교사 뒤편 작은 언덕에 올랐다.
끝없이 넓게만 보였던 운동장은 손바닥만하고, 그렇게 키가 컸던 느티나무는 우리네 어머니 같은 품으로 의연하게 서서 자금도 우리들을 기다리는 듯 하다.
점심시간이면 뒷동산에 올라 이야기를 나누며 종소리에 맞춰 교실을 향해 뜀박질 하던 말괄량이 친구들과, 온갖 심술이라면 빠지지 않던 까까머리 머슴애들, 너 나 없이 하나가 되어 해를 안고, 지고 걸어서 등하교 하던 먼지 풀풀 나던 학교 앞 신작로, 30여년전 그때로 돌아가 추억의 미로 속을 헤매고 있는데 지천명을 바라보는 신사가 어깨를 가볍게 툭 친다. 얼굴을 돌렸다. 유난히도 내게 심술궂던 명환이었다. 그 애는 한 마을에 살던 부잣집 막내아들이었다. 비포장 길을 걸어서 다니는 우리들과는 달리 늘 반짝이는 자전거를 타고 다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해 그림자 뉘엿뉘엿한 길을 친구와 손잡고 걷노라면 늘 가방을 자전거에 실어다 주던, 엉덩이에 점이 몇 개 있는지, 정강이에 흉터가 몇 개 있는지, 숨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던 마을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내 주변을 맴돌아 친구들과 어른들로부터 놀림을 받던 아랫집에 살던 친구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로 다른 지방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며 만남의 기회가 엇박자 돼 자연스레 멀어졌던, 간간히 마을에서 들려오는 성공했다는 소식만 들을 뿐이었던 친구다. 까까머리 풋풋한 모습은 어디가고 세월을 머리에 하얗게 인 채 넉넉한 풍채의 영락없는 우리들 아버지 모습으로 만남이라 약간의 낯설음도 잠깐 이내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었다. 낯선 듯 낯익은 얼굴을 보며 저절로 웃음이 묻어났다.
세월은 우리들의 모습을 변하게 만들었지만 마음만큼은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갑작스레 내 머리를 꼭 쥐어박으며 한마디 했다.
“야 임마!, 넌 나랑 결혼했어야 했어!. 너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어?”
서로가 한 참을 멋쩍게 바라 봤다.
그럼 그때, 등교시간에 �기는 날이면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산허리를 돌아 지름길로 등하교 하던 어떤 날. 그날도 지천으로 진달래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산 벚꽃 나무가 환한 등불을 밝히고 있었다. 무리져 피어 있는 진달래 뒤에는 문둥이가 산다던 어른들의 말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고도 빠른 걸음으로 친구와 땀을 흘리며 걷고 있는데 길 위 낮은 산자락 꽃무덤에서 가방을 들어다 준다며 폴짝 뛰어나와 뒤춤에서 살며시 건네주던 한다발의 진달래꽃, 그 꽃술에 붙어 있던 꿀맛처럼 풋풋하면서도 달달함이 묻어나던 그 시절의 프러포즈였단 말인가.
아리송한 기분으로 언덕에서 내려 와 학교 이곳저곳을 돌아 봤다.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듯 전교생 60여명의 작은 학교, 6백여명의 학생으로 좁디좁던 콩나물실루 같던 교실과 운동장이 이제는 너무 넓다. 교실을 쩌렁쩌렁 울리던 우람한 체구의 사회선생님도, 무서움에 벌벌 떨게 했던 깡마른 수학선생님도, 유난히 칠판 글씨를 잘 썼던 내 이상형의 국어선생님도, 우리들의 마음을 잘 읽어주던 음악선생님도, 늘 회초리를 들고 교문을 지키던 학생주임 선생님도 계시지 않았다. 더러는 세상을 등졌다는 친구도 있고, 어떤 친구는 현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정신을 놓았다는 친구도 있고, 또 어떤 친구는 건강이 좋지 않아 신체의 일부를 드러냈다는 친구도 있다.
음악도 사라졌다. 윙윙대던 소리도 사라졌다. 동문회는 끝났다. 끝나지 않은 것은 오직 가슴속 가득한 그 때의 빛바랜 풍경 과 가슴 한 자락 들어찬 알싸한 얼굴들뿐이었다.
축제가 끝나고 침묵이 흐르는 교정을 뒤에 두고 어둠 속에서 더 화사해 지는 꽃들의 축복을 받으며 삶의 둥지가 있는 자리,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서 있던 언덕에 내렸다
각자의 목적지를 찾아 쉼 없이 오고가는 차량들의 질주를 무심코 내려다 봤다. 발아래 불빛들이 휘황하다. 나 보다 낮은 위치에서 총총히 움직이는 것을 보는 쾌감, 이런 맛에 위정자고 되고, 권력자가 되려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홀로 바람에 펄럭이는 당선인사 현수막, 민심의 선택을 받은자나 못받은자나 길거리 가득 채우고 있는 현수막 앞에서 금배지를 위해 낮은 자세로 프러포즈 하던 낯선 얼굴들을 생각했다.